목회칼럼(9월1일)

주품에교회
2019-08-31

이사야 1장 19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2)”


하나님이 기뻐하는 마음이 뭘까? 그것은 정말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하는 마음. 그리고 들을 때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겁니다. 듣고자 하는 마음, 깨닫고자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 때에 하나님은 그 마음을 보시고 기뻐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열왕기상 3장 9절에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 솔로몬이 왕이 되면서 그의 인생에 왕의 초년병일 때에 주 앞에 기도했던 내용입니다.

“하나님 내게 듣는 마음을 주세요.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고자 하는 마음, 음성을 듣고자 하는 마음, 백성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마음을 종에게 주옵소서.“ 그래서 솔로몬은 인생에 이 듣고자 하는 마음을 간구하고 구할 때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셨고 잘 분별하여서 그 나라를 태평성대에 이르게 했습니다. 여러분 어느 시대든지간에 통치자는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생각의 고집대로만 국가를 이끌어가고 정치를 하는게 잘하는게 아니고 국민이 뭘 원하는지 뭘 바라는지 국민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서 자기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든, 신임하는 사람이든 국민이 아니라고 하면, 국민이 이해와 납득할 수 없다고 한다면 자기 뜻을 내려놓고 국민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것이 그게 성숙함입니다.

솔로몬은 약관의 나이에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소리와 백성의 소리를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때 솔로몬은 지혜로웠고 총명했습니다. 성경 역사에, 기독교 역사에 성경에 나오는 바울 사도를 능가할 주의 종은 없었습니다. 신학과 말씀과 또 설교에 있어서 바울사도를 능가할 사람은 내가 볼 때는 없었어요. 그 위대한 바울사도의 주옥같은 설교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결국은 창가에 앉아서 졸다가 떨어져 죽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그랬습니다. 왜냐?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겁니다. 정말 듣고,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주의 음성에 귀 기울였을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마음은 다른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할렐루야.

당회장실에서